김창희 전 현대건설 부회장(64)은 1982년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 11년 만인 1994년까지 현대자동차 이사.상무.전무.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 후 다시 11년 만인 2005년에 해비치호텔&리조트 대표이사, 현대 엠코 대표이사 사장, 그리고 6년 후인 2011년에는 현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전한다.
그가 ‘샐러리맨의 신화’로 인정을 받는 이유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기업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비록 규모는 대기업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자동차 부품 회사인 비엠아이의 오너(대표이사 회장)로서 새로운 꿈을 향해 다시 힘차게 뛰고 있다.
▲출생 및 성장, 가족 관계
김 전 부회장의 고향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다.
하지만 그는 제주시 무근성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부친은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농사를 지었다.
김 전 부회장은 제주북초등학교와 제주제일중학교, 오현고, 제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학창 시절을 평범하게 보냈다고 한다.
가족은 초등학교 동창인 부인 김인희씨와 사이에 2남이 있다.
남가주대를 졸업한 큰 아들 김동현씨(38)와 미시간대 출신인 작은 아들 김동환씨(35)는 김 전 부회장을 도와 비엠아이에서 관리 및 생산 파트를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 입사
김 전 부회장은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것은 “당시 우리나라는 현대, 삼성, 대우, LG 등이 대그룹이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지만 큰 나무를 올라가다보면 다 못 올라가도 작은 나무 보다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크게 보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교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대기업을 택했다.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철학도 마음에 와 닿았다.
김 전 부회장이 현대자동차 제주본부에서 근무할 당시 정주영 회장은 1년에 두 번 정도 제주에 내려왔다고 한다.
“제가 제주지역 책임자였으니까 정주영 회장님을 자주 모시고 다녔는데 너무 무서웠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 김창희 전 부회장(사진 왼쪽)은 현대 엠코의 시공능력 평가 순위를 48위에서 19위로 끌어올린 성과를 인정받아 현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사진은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을 방문한 모습. |
▲성공 신화를 쓰다
김 전 부회장이 2004년 현대자동차 제주지역 총괄본부장을 할 때였다.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자동차 판매 전국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자동차 영업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한 실적을 거뒀고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제주지역에 골프장이 4개 밖에 없어 육지에서 손님이 내려와도 골프장 부킹이 어려울 때였다.
김 전 부회장은 여기서 착안, 그룹 최고위층에게 “제주의 관광산업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그룹의 사업도 다각화하자”며 골프장과 콘도 건설을 건의했다.
“당시 현대.기아차그룹에 건설회사가 없었고 수익성 문제 등도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반대도 적지 않았지만 그룹 지원없이 추진해 보겠다고 해서 성사시켰다”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그는 또 “제가 콘도나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다른 분야도 공부하고 하는 걸 보니까 최고위층에서 김창희는 뭔가 할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한다”며 “인정을 많이 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골프장과 콘도 건설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룹은 그를 현대 엠코(現 현대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전시킨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현대 엠코의 CEO로서 그는 제주의 해비치호텔&리조트와 현대.기아차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당진제철소(현대제철) 건설사업을 진두지휘해 성공적으로 공사를 완공했다.
그가 6년 동안 현대 엠코를 이끌면서 시공능력 평가 순위를 48위에서 19위로, 매출액은 7900억원대에서 1조9000억원로 성장시켰다.
이후 그는 2011년 현대그룹 산하의 현대건설을 인수할 때 인수단장을 맡았고 곧 바로 현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대건설 부회장 때는 싱가포르 해저 유류저장고와 아랍에미리트 원자력 발전소, 사우디아라비아 화력발전소 등 굵직굵직한 해외 건설 공사를 수주하고 완벽하게 사업을 마무리시켰다.
▲ 현대자동차 제주본부에 근무할 당시 정주영 회장과 1년에 두 번 정도 동행했다는 김창희 전 부회장은 정 회장을 무서웠다고 회상한다. 사진은 김 전 부회장(사진 오른쪽)이 故 정주영 회장과 한라산 등반할 때 모습. |
▲인생 및 경영 철학
김 전 부회장은 “오로지 일만 열심히 했다”고 한다.
“출세를 하겠다거나 고위 임원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하고 자기 전공 이외의 것이라도 접할 기회가 되면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까 어느날 현대차그룹의 CEO에 올라와 있었다고 했다.
“특히 제주 출신이고 제주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출세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고 털어놨다.
대기업을 경영할 때는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을 꾸짖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고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 다음에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임직원들이 문제가 발생한 것, 실패한 것, 잘못된 것들을 숨기지 않고 토론의 장으로 올려놔 해결책을 모색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방대 출신으로서의 한계 극복
김 번 부회장은 “현대자동차에 입사를 하고 보니 일 잘하는 사람이 우선이었다”며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면 인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경쟁은 치열했다고 한다.
서울대나 연.고대 출신들도 많았고, 명문대 출신들은 보이지 않게 자기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있었지만 제주대 출신이다 보니 그런 기대를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는 또 “어떤 면에서는 주위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남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됐고 그 때문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현대건설 고문을 끝으로 대기업의 CEO 생활을 마무리한 김 전 부회장은 현대자동차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외장 부품을 생산하는 비엠아이를 인수,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일만 했기 때문에 좀 쉴까도 생각했는데 다시 일을 하게 됐다”며 “지금은 중소기업이지만 앞으로 회사를 키워야 하겠다는 일념뿐”이라고 했다.
비엠아이는 충남 아산에 공장을 갖고 있는데 자동차 범퍼 등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종업원은 250명 정도이고 연간 매출액이 1300억원에 이른다. 중견기업에 버금가는 규모다.
▲서울도민회장을 맡다
김 전 부회장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고향 제주도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서울도민회장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도민회는 출향인들끼리 화합하고 단합해서 친목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리고 고향을 떠나온 재외 도민들이 서로 도움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고 도민회 운영 방향도 제시했다.
특히 김 전 부회장은 대기업 CEO 출신답게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제주 출신 경제인들의 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제주 출신 경제인들의 단체를 만들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구분없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취업난을 시달리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
김 전 부회장은 “대기업 취업 문턱은 너무 높고 청년 취업난은 가중 되고 있다”며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하겠지만 우회적인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회 방법으로는 대기업의 협력 회사에 입사해 경력을 쌓은 뒤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기업 임원들 중에도 이 같은 방법으로 대기업에 들어간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해외 현장을 통한 취업도 제안했다.
“해외 현장에는 정규직이 모자라다 보니까 현장 채용을 하는 제도가 있다”며 “거기서 일을 열심히 하고 우수한 근무 성적을 받은 사람은 추천해서 정식 지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싱가포르에 출장을 가보면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 많은 한국 학생들이 일도하고 영어도 배우고 있었다”며 “이처럼 기술을 배워서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창업을 해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시련도 많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격려했다.
▲고향 제주의 의미와 미래 제언
김 전 부회장은 “제주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기분이 좋다”며 “고향은 어머니”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비행기에서 제주공항에 내리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했다.
제주의 미래 발전과 관련해서 그는 “두바이에 출장을 갔을 때 이슬람 국가의 공항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우리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신의 경험담부터 소개했다.
그는 이어 “두바이 등 중동 지역에 관광객들이 많이 안 가도 양질의 고급 관광객이 위주다보니 관광산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며 “제주의 관광산업도 고품질 관광으로 변화할 때가 됐다”고 의견을 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