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6) 남편의 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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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믿고 도우는 사회가 되려면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 돼야!
믿음과 안정된 일자리가 있어야 사회가 편안 하다.
저의 남편의 회사 사무실은 (원래는 동경시내에 있었는데 옮겨와서)
차가 다니지 않는 시골 산속에 있었다.
HITACHI-deco 반도체 IC회로 설계 팀장을 맡아 일을 했는데
회사는 산속에 있는 절보다 조용했고 회사정문에서 1~2분 떨어져 있는
주차장은 20대정도 회사를 찾아오는
사람(buyer)들의 주차 하는 곳 이라한다.(손님을 배려해서)
회사직원들의 주차장은 차의 소음 때문에 산 밑에 있어
걸어서 3~5분정도 걸어야 정문에 도착한다.
내가 차를 쓰는 날은 퇴근시간에 마중을 가야해서 잠시 그 주차장을 이용 했었다.
사무실 안에서도 구두 발자국소리를 내지 않게 전원(全員)이
소리 없는 슬리퍼를 신는다했다.
삼성,현대,LG, 반도체 기술 제휴(提携)해서 수원 삼성에
HITACHI 지사장으로 오기 로하고 삼성에서 매년(每年) 5명씩
직원을 뽑아 일본에 데리고 가서 교육을 시켜 보내고 하는 동안
한국으로 오면 회사를 옮겨버려서 애를 먹었다한다.
그러는 동안 IMF가 와서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지만.
남은 것은 한국 사람들의 배신감에 아직도 한국 사람은
믿음이 없다고 싫어하게 되었다.
27년 전 어느 날 민단(民團) 창립기념일에 참석을 하게 됐는데
지역 국회의원, 지방 유지들이 참석하고 한국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을 만들었던 김동주 선생님도 참석했는데
한국에 오면 꼭 자기를 찾아달라며 명함을 받은 적이 있었다.
27년전 에는 반도체, 마이크로컴퓨터,의 중요성을 몰랐는데
내 생각에도 정년퇴직한 다음 한국에 와서 기술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반도체는 일본의 기술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 위치에 있어 다행이다.
한국인 이라는 것 때문에 중요한 군무기(전투기, 등등)만들 때면
팀에서 빠져 집에서 중요한 것만 전화, 컴퓨터, 로 일을 해야 했고
진급 때는 귀화를 건의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 날 유능한 회사동료가 암으로 사망 하게 됐는데
회사에서 부인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자녀들을 장학금으로 학업을 계속하게 해주었다.
회사가 병원을 가지고 있어
1년에 한번 직원부인들까지 무료 종합검진을 해준다.
우리가 결혼하자 단독주택 을 마련해줘서 회사에서 15분정도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산을 깎아 주택단지를 만든 곳인데 우리가 사는 곳에는
같은 회사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 등굣길에는 소 외양간이 있어 코를 막고 뛰어 지나가곤 했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소들과 마주보며 지나다녔다.
지금은 외양간들이 없어져서 점점도시화 되어 지금은
그때 외양간 소 똥냄새가 지난 세월과 함께 그리울 때가 있다.
정년퇴직은 했지만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믿음 주는 회사에서...
믿음이 정착해야 신뢰하고 안정과 여유로움이
서로 돕는 사회가 형성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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