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다섯 달 만에 17억원어치 잡아… '추자도 최고의 조기잡이' 지승남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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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 배를 타, 바다에 뿌린 눈물 한 드럼통… 이젠 '용왕 아들'로 불려"
中卒 후 아버지와 함께 조업
조기잡이 선장 경력 16년
한 번에 5억원어치 잡기도
새벽 投網 오전에 거둬 올려
그물코에 조기의 아가미 끼여
수익은 선주 6 : 선원 4 배분
제주도 한림항 부두에 있는 벌떼다방은 TV소리가 시끄러웠다. 담배 연기 속에서 뱃사람들이 잡담을 나누거나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추자도 최고의 조기잡이' 지승남(49) 선장의 배는 이날 새벽 한림항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세 피항(避港) 겸 잡은 조기를 수협에 넘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번에는 7950만원어치 잡았고 내일 바람이 자면 다시 출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자도 최고의 조기잡이' 지승남(49) 선장의 배는 이날 새벽 한림항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세 피항(避港) 겸 잡은 조기를 수협에 넘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번에는 7950만원어치 잡았고 내일 바람이 자면 다시 출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승남 선장은“조기는 큰놈을 잡아야 한다. 그물코 1㎜ 차이에 실제 잡히는 조기의 크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제주 한림항=최보식 선임기자
"바다에 그물을 내리기만 하면 조기가 한가득 잡히니까. 한창때는 선원들을 잘 구하면 많이 잡고, 못 구하면 못 잡았을 정도다. 선원을 구하느라 출발이 하루 늦으면 1억원이 날아가곤 했다."
조기잡이는 8월부터 시작해 산란기가 되는 4월에 끝난다. 한번 출어해 다음번 출어 때까지를 '항차'(航次)라고 하며, 평균 보름이 걸린다. 조기잡이는 대략 16항차 조업을 하는 셈이다.
지 선장의 '경창호'는 플라스틱 상자 1500개를 싣고 나간다. 작년 말까지 대부분 만선(滿船)이었다. 어떤 항차에서는 담을 상자가 모자라 항구에 들어와 잡은 조기를 부려놓고 다시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만선할 때는 5색 깃발을 달고 꽹과리를 치며 들어왔다는데.
"요즘은 안 한다. 막 끌어올린 그물 속 조기떼는 황금빛이다.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최고의 대박을 터뜨린 항차는?
"한 번 나가서 3억원어치까지 잡아봤다. 그런 날이면 배가 축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사실 나는 재작년 실적이 더 좋았다. 한 번에 5억원어치까지 잡았다. 통산 20억원의 어획고를 올렸다. 이번에는 어선마다 고루 잘 잡혔지만, 그때는 잘 잡는 사람은 잘 잡았고 못 잡는 사람은 아예 못 잡았다. 쫄딱 망한 선주들도 있었다."
―조기를 제일 잘 잡는 당신의 비결은 무엇인가?
"금광이 아닌 데서 금을 캘 수 없듯이, 어군(魚群)에 그물을 놓아야 한다. 그런 포인트를 잘 찾는 것이다."
―어선마다 '어군탐지기'가 있어 그걸로 쫓는다고 들었다.
"어군탐지기가 과학이지만 난 100% 안 믿는다. 어군탐지기에 찍힌 검은 점(點)을 보고 그물을 쳐도 안 잡히는 경우가 있다. 플랑크톤떼일 수 있다. 반면 어군탐지기에 안 나와도 고기가 걸릴 때가 있다."
―어군탐지기가 아니라면?
"어느 물때(바닷물이 차고 빠지는 것)에는 바다 어디서 조기가 출몰했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가령 오늘은 '열두물(음력6일·20일. 초하루와 보름은 일곱물)'이니 어디로 가야 고기가 있겠다 판단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하다 보니 내가 조업하는 바다를 제법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언제부터 배를 탔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 15살 때부터 배를 탔다. 아버지는 '수산고라도 가야 할 텐데' 했지만, 그럴 만한 형편이 못 됐다. 아버지는 남의 배를 타고 있었고 엄마는 노동일을 했으니까."
―그 나이에 험한 뱃일을 해낼 수 있었나?
"섬에서 살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고기잡이였으니까. 그 시절 나만 어려서 배를 탔던 게 아니다. 친구들 중에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배를 타기도 했다. 내 두 여동생도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바로 아래 남동생만 대학까지 보냈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참치박사'로 유명한 지승철이 내 동생이다. TV에도 많이 나왔는데 모르나."
그가 남의 배를 탄 지 일년 뒤 아버지가 빚을 내 1t반짜리 어선을 장만했다. 부자는 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채낚기(줄에 낚시를 매달아 잡는 방식)로 삼치·방어·도미 등을 잡았다.
"작지만 우리 배였다. 고기를 조금 잡아도 모두 우리 것이 됐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일은 대충 하고 가끔 다른 사람과 시비도 붙었다. 그때는 마음이 안 맞았지만, 돌아가시고 나니 그런 아버지가 그립다. 한 배를 탄 게 17년이나 됐다."
그가 조기잡이를 시작한 것은 1996년이다. 그때 나이 33살이었다. 정부 융자 2억5000만원을 얹어 6억원을 들어 39t짜리 어선을 건조한 것이다. 하지만 조기잡이 선장이 된 바로 그해, 그에게는 조기가 안 잡혔다. 배를 몰고 갔다가 풍랑에 선원 한 명을 잃는 사고까지 났다. 그는 당시 심정을 "바다 위에 한 드럼통의 눈물을 흘렸다"고 표현했다.
"이듬해 8월 두 번째 항차에서 그물에 10t짜리 밍크고래가 걸려 있었다. 추자도 근해에서 고래가 잡힌 것은 처음이었다. 4000만원에 팔았다. 횡재했다고 여겼는데, 이를 산 사람은 부산에서 1억원을 받고 되팔았다. 그 뒤로는 내가 그물을 놓을 때마다 조기가 잘 잡혔다. 워낙 잘 잡으니까 섬에서는 나를 '용왕님 아들'이라고 불렀지."
―지금까지 잡은 조기 숫자는 얼마나 될까?
"마릿수를 어떻게 계산하나. 수천만 마리가 될 테지. 내가 실적이 좋은 것은 큰놈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다. 조기는 클수록 값은 몇 배로 뛴다. 같은 규격의 상자에 마릿수가 적게 들어있을수록 판매단가는 몇 배로 뛴다. 숫자가 적다는 것은 큰놈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 160마리가 들어간 상자는 6만원, 130마리는 11만원, 100마리는 32만원이지만, 70마리는 150만원, 50마리는 300만원이었다."
그의 배는 유자망(流刺網)을 쓴다. 직사각형 모양의 그물을 바다에 수직으로 펼쳐서 놓으면 조기가 통과하다 아가미가 그물코에 꽂힌다.
―바닷속이 보이나. 큰놈을 어떻게 잡나?
"그물코를 크게 하면 된다. 가령 52㎜와 51㎜ 그물코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다 밑에서 큰놈이 걸리는 확률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고작 그물코 1㎜ 차이인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숫자로 많이 잡을 거냐, 큰놈을 잡을 거냐 선택하는 것이다. 그물코가 촘촘하면 작은놈은 많이 잡히나 큰놈은 막혀서 되돌아간다. 그물코가 성기면 작은놈은 다 빠져나간다."
―조기잡이 하면 과거에는 연평도였는데.
"그건 먼 옛날 얘기다. 전국에서 조기잡이 배는 추자도 선적이 가장 많다. 이어 목포, 여수, 영광법성포 순이다. 어장(漁場)이 아래로 내려와 소흑산도 남쪽, 만지도, 추자도 근해에서 이뤄진다. 어장마다 중국 어선이 수백척씩 들어온다. 밤에 보면 불야성이다. 중국 선단은 '쌍끌이 저인망'으로 긁어간다. 해 뜨면 단속을 피해 공해상으로 빠져나간다."
―조기는 밤에 잡나, 낮에 잡나?
"밤에는 대부분 어군이 바닷속 중간 지점쯤 떠있다. 유자망을 치면 바다 밑에서 10m쯤 높이가 된다. 그 위에 있는 고기는 안 걸린다. 그래서 밤에는 조업할 수 없다. 새벽 4~5시쯤 투망해서 한숨 잔 뒤 오전 10~11시쯤 그물을 거둬올린다."
―그러면 밤에는 무얼 하는가? 물론 자야겠지만.
"조기가 많이 잡히면 밤새도록 그물에서 조기를 뜯어내야 한다. 하루에 300~400상자쯤 채운다."
"뱃일은 힘들다. 그래도 배를 타는 것은 자신을 위하든 가족을 위하든 돈 벌려고 하는 것이다. 멋으로 하는 줄 아는가. 먹고살기 위해 참고 하는 것이다. 그물을 직접 손으로 잡아당겨 올려야 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편해진 셈이다."
―선원 모집이 어렵다고 들었다.
"선원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다. 출어 때마다 찾으러 다녀야 하고. 휴가를 보내주면 안 돌아오기 일쑤다.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선원들도 많은가?
"승선 정원에서 외국인 선원 비율이 있다. 우리 배는 5명까지 태울 수 있지만 3명을 배정받았다. 대부분 중국인 선원들은 여기 와서는 도망가버린다."
―대박을 터뜨리면 선원들의 몫으로 얼마나 돌아가나?
"이 바닥에서는 전통적으로 '부합제'라는 게 있다. 일년 총수입에서 지출을 빼고선, 선주 6: 선원들 4로 나눈다. 작년에는 선원들에게는 5000만원씩 돌아갔다. 기관장은 선원 몫의 두 배다. 믿을 만한 선원에게는 생활비 등을 선불로 주고 나중에 정산한다. 대박을 치면 보너스로 몇백만원씩 준다."
―선주가 너무 많이 갖고 가는 게 아닌가?
"선원은 몸으로 때우지만 선주는 모든 걸 투자한다. 한 해 기름만 600드럼 쓴다. 드럼당 약 20만원이다. 내 배에서 쓰는 유자망은 폭 23m의 그물을 50개 이어붙인 것이다. 그물 한폭당 11만원이다. 한 번 조업 나가면 100폭 이상 찢긴다. 그물을 조립하는 인건비도 폭당 1만원이다. 조기가 많이 걸렸을 때는 그물째로 항구로 들어온다. 부두에서 사람들을 사 조기를 떼낸다. 시간당 노임이 만원씩이다. 냉동차도 불러야 한다. 어판장에서 조기를 담을 나무상자도 올랐다. 매출 실적이 다 나와있어 세금 적게 내면 큰일난다. '조기 대박'이 터졌다고 하지만, 실제 소득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목포에서 조기잡이 선주들을 만나보니 최고급 외제차를 타더라. "주위에서 돈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며 매스컴에 나오는 것을 꺼렸다.
"난 운전면허도 없다. 조기가 늘 대풍일 수는 없다. 해마다 이러면 육지의 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뛰어들지 않겠나."
―농부는 농토에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도 줘야 추수를 할 수 있다. 어민은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히니, 항구에서는 돈 단위가 다른 것 같다.
"뱃사람들은 흥청망청하는 경향이 있다. 난 바다에서 고생해서 번 돈을 헛되게 안 쓰려고 한다. 자식들을 가르치고 노후대책도 해야 된다. 바닷일은 위험하다. 사고가 나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또 우리 뱃사람은 대부분 가족을 떠나 산다. 귀항해도 집에 2~3일 머물고 또 나와야 한다."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과 만선(滿船)을 해달라는 것, 어느 쪽을 비나?
"젊었을 때는 비 오고 바람 불어도 다녔다. 먹고살기가 어려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랬다. 세월이 갈수록 바다가 겁이 난다. 조업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빈다."
―그날 허탕을 치게 되면?
"오늘 못 잡으면 내일 잡고, 올해 못 잡으면 내년에 잡으면 된다."
―본인 삶에 만족하는가?
"어린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이만큼 됐으니 만족한다. 다른 일을 했으면 지금의 위치가 안 돼 있을 것이다."
―어떤 위치를 말하나?
"내가 추자도에서 조기를 제일 많이 잡는 선장 아닌가. 섬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은 다 알아준다."
15일 현재 그의 배는 추자도 근해에 떠있었다. 그는 조기를 원 없이 잡고 있는데, 막상 시장에는 조기값이 별로 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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