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이 제주일보와의 신년대담에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제주일보.방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선배 언론인으로서 이야기하고 있다.<고기철 기자>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등장 등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지난 12월 1일에는 종합편성(종편) 채널 4사가 일제히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지상파 채널 4개에 종편 채널 4개가 새롭게 가세하면서 미디어업계의 빅뱅은 시작됐다.
임진년을 맞아 지난 8월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종합미디어그룹으로 ‘제3의 창업’을 선언한 제주일보·방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배 언론인에게 들어봤다.
▲1970년대 유신시대에 시작해 국내 유력 일간지 정치부 기자와 뉴욕 특파원, 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30여 년 언론인으로 지내셨는데 그때 언론은 어땠습니까.
-1974년 1월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우리나라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는 산업자체가 없을 때다. 지금과 성격이 다르지만 취업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기자 4~5명을 뽑는다고 하면 2000~3000명이 응모했다. 특히 내가 입사할 때는 언론통제가 가장 심할 때였다. 1월 3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입사하는 날 긴급조치 1호가 발령됐다.
그때 신문에서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사회면이었다. 프로 스포츠라고는 고교야구가 전부였고 정치면 기사도 기자들이 취재해서 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 문화면에서는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할 수 있었다.
▲요즘 대세는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즉 SNS가 기존 미디어 생태계를 뿌리 채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어디에 두어야 한다고 보는지.
-사회적 현상이나 사회적 진보는 막을 수가 없다. 사회의 리더나 그 사회 구성원들은 그 물결을 어떻게 안전하게 타고 가느냐를 고민하는 것일 뿐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15년 전 인터넷매체가 생기면서 신문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죽어가던 라디오는 자동차와 문명을 맞아서 잘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 많은 분야 가운데 미디어환경이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존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은 디지털이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도 ‘SNS 격랑기’를 가다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은 누구나 기자가 되는 세상이다. SNS의 역기능과 순기능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현재로서는 겉잡을 수 없는 문제지만 분명 어느 시대에 도달하면 SNS 역기능을 만회할 미디어의 새로운 역할이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1일부터 종합편성채널이 본격 출범했다. 종편 출범으로 지역신문과 지역방송에게는 위기의 상황이 올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은데, 이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신문은 정밀한 취재에 의해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정제된 매체다. 여론을 형성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예를 들면, 근조화환을 보내야 되느냐 마느냐하는 논란에 대해서 SNS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근조화환을 보내느냐 등 여론에 동반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SNS가 아니라 신문이다.
옛날처럼 정보를 전달하던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신문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신문의 역할이 남아있다. SNS, 방송 토론회 등이 있지만 정보를 정제해서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은 신문이 유일하다.
활자 매체의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종이 감각보다는 접는 LCD 등 새로운 미래 신문 재료 수용에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내년은 4.11 국회의원 선거와 12.19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바림직한 저널리즘의 역할과 모습을 조언한다면.
-중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보도의 객관성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이 최고의 주안점을 두고 있는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해 줄 것 같은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한다.
예를 들어 개발이면 개발, 서민정책이면 서민정책 등 테마별로 공정하게 보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선정이 아니라 양면성을 그대로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다음은 논평이나 심층취재 등을 통해 각 후보들이 제시한 정책을 올바르게 유도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처음 출발은 정보 전달이라고 본다.
▲지역 언론의 역할과 함께 저널리스트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조언한다면.
-제주일보가 지역 언론으로서 이해관계는 로컬에 있지만 이해관계를 움직이는 것은 세계시장이다. 세계적인 마인드로 지역을 봐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이미 글로벌한 것에 편입됐다고 본다. 제주의 주산업이자, 도민들의 주수입원인 감귤도 글로벌한 힘에 의해 움직인다. 시내 곳곳에 생겨나는 커피숍도 글로벌 추세다. 커피가격도, 휘발유 가격도 모두 국제시장에서 결정된다.
어느 하나 국제적인 것과 결부되지 않은 것이 없다. 관광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 물건이 가면 10년 후에는 사람이 간다고 했다. 1960년대 일본 물건이 미국에 가더니 1970년대에는 일본 관광객이 미국, 유럽으로 관광을 가기 시작했던 것 마찬가지다. 글로벌한 시각에서 로컬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글로벌 시각과 관련해 제주도 역시 한.미FTA타결 등으로 1차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제주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인다면.
-정보통신혁명이 무르익은 시기다. 농업사회에 제주도에서는 할 것이 없었다. 땅도 척박하고 교통도 나쁘고 제주도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제주도에는 관광이 있었지만 지금, 그리고 미래 정보통신사회에서는 제주도가 서비스산업의 메카가 돼야 한다. 땅의 가치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제주도처럼 활발한 곳이 없다. 인구 50만에 공항 인구가 붐비는 곳은 제주도 밖에 없다.
제주지역의 산업입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주도는 이미 개방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고소득을 올리고 싶다면 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다. 단순히 관광산업으로는 고소득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나 다양한 기업들이 제주로 이전해 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시시대는 물류가 필요없다. 제주도는 작은 실리콘벨리도 가능하다. 디자인, 아이디어만 창출만하면 된다. 100만 인구도 안 되는 시애틀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스타벅스, 세계 최대 서점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중심이 됐다.
지식산업종사자들이 많이 모이면 일을 만들게 돼 있다. 제주도도 그런 기반이 되어야 제주대학교도 좋아지고 제주대 졸업자들도 고급업종에 종사하면서 살 수 있다.
▲비영리단체인 HRA(Human Resources Academy)를 설립해 제주지역 인재 육성에 기여하고 계시는데, HRA이란.
-한국일보 같이 입사했다가 기자를 그만두고 기업에서 일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중에는 캐네디스쿨에서 공부까지 한 친구인데 환갑을 앞두고 어떤 사업을 할까 고민하는 것을 보고 후진을 가르치자고 제안했다.
그 역시 지역 출신이었다. 둘다 지역 인재들이 모두 서울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터였다. 지역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기르지 못하니까 생기는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광주와 전남지역 출신 대학생 10명을 모아서 가르쳤다. 인문학에 대한 괄시가 심할 때인데 학생들에게 인문학 고전을 읽히고 기업실무, 스피치 방법 등을 세미나식으로 강의했다.
의외로 반응도 좋고 괜찮은 과정이 될 것 같아서 이듬해에는 서울로 그 프로그램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때 탐라영재관 입주 학생들 가운데서도 4명을 뽑아서 시작했다. 개별지도 형식이라 대학생들이 아주 잘 따랐고 호응해줬다.
2007년에는 제주에서 별도로 운영을 시작했다. 1년에 한차례 참가자 모집이 이뤄지고, 거의 1년 간 매주 토요일마다 집중적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학기중 학생들의 시험 일정이나 수업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영어 실력을 키워야 하고 3주에 한번 고전을 읽고 레포트를 써야 한다. 보통 의지로는 힘들다. 특히 이들을 관리하는 교수진의 애정도 대단하다. 제주지역 언론인 출신 등도 도와주고 있지만 현장근무 경험자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 잘 가르친다기 보다는 케어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까지 70명이 수료했는데 이 가운데 35명이 취업을 했다. 몇 명을 취업시켰느냐보다는 학생들이 얼마나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느냐에 주안점을 뒀다. 중소기업에 취업을 가고 소규모 창업을 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 대기업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꿈만 높게 잡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법, 과수원을 운영하더라도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김수종=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출신, 1974~2005년 한국일보 근무,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 역임, (현)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환경책 '0.6도'와 '지구온난화의 부메랑(공저)'